전시제목/ 새벽빛 사이의 감각 Dawn Light, Sense of Between
전시기간/ 2024.1.24-2.7
전시작가/박명미, 민경, 김재연
관람장소/ 스페이스 미라주
관람시간/ 1:00pm~07:00pm / 월요일,화요일 휴관
기획 및 서문/ 손지현
디자인/ 아페퍼
주최/ 스페이스 미라주
《새벽빛, 사이의 감각》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안에서, ‘명명되지 않은 것’들을 빛으로 물들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하려는 여성 작가들의 미시적 서사에서 출발한다. 박명미(Parkmyungmi, 1982-), 민경(Minkyung, 1979-), 김재연(Kimjaeyeon, 1989-)은 서로 다른 방법론을 통해 우리의 일상에서 매 순간 함께 공존하고 있음에도, 호명에서 배제된 어떤 것들을 끊임없이 회상하고 떠올린다. 나의 언어로 붙잡고 싶은 욕구와 함께, 우리의 관심은 그렇게 ‘존재하지만 부재한 것’들을 향해 있다.
우리의 곁을 살펴보면, 구체화된 이름 없는 사물들, 혹은 가려지거나 은폐되었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첨예하게 귀를 기울이며 주변 환경을 들여다볼 때, 비록 흐릿하지만, 그 안에 분명히 남겨진 발화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약한 듯 질긴 상태이며,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그 무엇보다 단단하고 강인한 것일 테다. 이는 어쩌면 유약한 존재들에게서 포착해낼 수 있는, 그렇지만 본질적인 가치를 한껏 머금은 가장 아름다운 상태의 결실이지 않을까.
박명미 작가의 <폐가(숲에서)>(2015-2017) 작업은 오름 중턱과 양양에서 동해로 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숲, 폐가로부터 ‘자본이나 권력에 의해 밀려나는 풍경’을 떠올린 경험에서 착안되었다. 작가는 회화 작업에서 연필, 파스텔, 아크릴을 주요한 매체로 삼는데, 이는 친숙하고 검소한 재료의 무한한 가능성을 향한 포용적 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얇은 필선과 옅은 푸른 색감을 배경으로, 지우기와 그리기로 덧입혀진 숲과 폐가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밀려나는 풍경, 버려진 사물의 그 존재론적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춤을 추려는 사람(남편-되기)>(2024-) 연작은 ‘남편’의 역할로서 남겨진 인물의 사적인 삶을 포착하여, 이를 드로잉으로 형상화한 작업이다. 작가는 반복적인 일상 가운데 유일한 탈출구로서 춤을 추는 사람의 모습에 주목하고, 신체의 움직이는 행위를 묘사하거나, 그의 소원을 화판 위에 필사하는 방식을 택한다. 타자의 시선이 아닌 주체의 내밀한 마음을 직접 들여다봄으로써, 작가는 그와의 긴밀한 관계 맺기를 통한 ‘남편-되기’의 일체화 과정을 구현한다. 이 같은 작가의 상상적 영역 속에서, <춤을 추려는 사람>은 한 개인이 유일한 역할 이전에 본연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는 여정을 시각화한다.
민경 작가는 사적 공간으로서의 집을 모티프로 삼고, 매일 똑같은 루틴을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들이 구축하는 세계관에 관심을 둔다. 작가는 <낯선 가족>(2023) 연작에서 ‘구성 사진(Staged Photo)’의 형태로 한 가정의 시공간을 촬영, 기록하는 전략을 취하며, 실제 인물의 재연에 기반한 연극적 요소를 도입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일상성이 우리에게 좌절된 욕구, 반복된 무기력 같은 ‘일상의 비참함’을 안겨다 주지만, 그 안에서도 남겨진 ‘생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아이들의 자라난 몸이 포착되거나, 창가를 밝히는 빛이 가정 안에 스며들기도, 그렇게 축적된 일상들이 모여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낯선 가족>은 이렇듯, 매 순간 펼쳐지는 일상에서 내면적 균열과 괴리가 일어나고 있는 찰나의 상태를 감지하며, 일상성에 잠재한 생의 징후와 그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화면 속 구성원들에게 씌워진 입체 조각인 <일상_가족 초상>(2023)은 인물과 사물의 이미지들이 입체적 포토몽타주의 방식을 통해 새롭게 배열된 작업이다. 이는 일상의 균열을 드러내며 단조로운 순간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이자, 실재와 허구의 경계에서 이야기의 단면을 묘사해 내는 도구가 된다.
<그림자 노동>(2023)은 작가가 화면 안에 직접 등장하여 가사 노동을 하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물이다. 작품의 제목인 ‘그림자 노동’은 오스트리아 철학자인 이반 도미니크 일리치(Ivan Dominic Illich)의 동명의 저서에서 빌려온 것이다. 노동의 사라짐과 존재함이 교차하는 가운데, 작가의 체현된 몸은 일상에서의 수행성을 보이며, 이는 가정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노동과 그 숨겨진 의미를 모색하기 위한 매개체가 된다.
김재연 작가는 <무너지고 쌓이는>(2020-) 연작에서 사진, 천, 조각 등 다양한 매체의 변주를 시도하며, 작가의 일상을 둘러싼 주변의 열매, 흙, 공기와 빛을 주제로 다룬다. 이 작업은 채집한 자연적 형태를 스캔, 혹은 시아노타입을 통해 이미지로 치환한 이후, 사진 위에 겹치기, 반복, 재구성 등의 변형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작업 범위를 넓혀, 천 소재가 갖는 매체의 확장성을 폭넓게 탐구한다. 이를테면 창가의 빛이 공간 안에 배치된 천에 여과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리하는 양상을 관찰하거나, 혹은 원단과 밀도, 질감에 따라 출력된 결과물이 변화무쌍한 것에 주목하여, 제작자의 개입에 따른 예측 가능성이 천에서 파생된 우연성과 맞물리고, 엇갈리는 접점을 가늠해본다.
<무너지고 쌓이는> 연작은 가족 형태의 변화로 가정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가운데, 주변의 일상을 지각하며 그로부터 느낀 내면적 감정을 작업화한 것이다. 작가는 외부와 내부, 바깥과 가정, 인공물과 자연물 등 불분명한 경계를 오가며, 이것이 한데 공명하는 모호한 양태의 집합체를 만들어 낸다. 이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A도 B도 아닌 무엇”을 발견하는 행위이자, “지금의 나를 의미하기도 하고 벗어날 수 없는 구멍 같은 것들”이다. 김재연은 자연의 형상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시킴으로써, 결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사이의 지점으로부터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이렇듯 박명미, 민경, 김재연은 명명되지 않은 것들이 남긴 흔적 속에서, 이것이 하나의 생으로 자라나 자기 존재로서의 삶을 되찾는 과정을 모색한다. 이름 붙이기 대신에, 이들은 먼 과거와 현재, 외부와 내부, 현존과 부재, 기억과 상실, 발화와 침묵 등 수많은 경계를 교차하며, 그 안에 남겨진 ‘사이의 감각(Sense of Between)’을 자신만의 언어로 탐색한다. 낡고 지워지며, 허물어가는 것으로부터 존재의 의미를 발견, 구축하는 이 여정은 마치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의 시작점을 알리며 밝게 피어오르는 새벽의 풍경을 환기시킨다. 그때의 사적인 단편들이 한데 모인 이 시공간에는 새벽의 시간성이 회귀하여 우리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게 된다.
끝으로, 여성이자 작가, 어머니이자 아내로서의 복수적 정체성을 공유하며, 세 명의 작가가 명명되지 않은 것의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에는 사랑과 돌봄, 그리고 연대와 희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여성 서사, 즉 여성들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삶의 방식 및 육체적 경험과 밀접하게 결부된 노동, 희생, 자아분열과 내적갈등, 그리고 멜랑콜리와 같은 복합적 감정이 스며들어 있다. 이들이 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곧 작가들이 구축한 작품 세계관을 경유하며, 저마다의 빛을 간직한 장소로 전환된다. 깊고 아늑한 새벽빛의 온기와 부드럽고 세심한 손길이 공존하는 이 공간 안에서, 사라지고 부재한 것들이 다시 새롭게 생성되는 어떤 순간을 목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획 손지현)
Dawn Light, Sense of Between
《Dawn Light, Sense of Between》 begins with a micro-narratives where in which female artists seek to imbue the 'unnamed' with light, remembering in their unique ways, within the world we inhabit. Parkmyungmi(b. 1982-), Minkyung(b. 1979-), and Kimjaeyeon(b. 1989), each employing distinct methodologies, consistently recollect and evoke elements excluded from conventional naming that coexist in our daily lives. Fueled by a desire to capture in one's own language, our attention is directed towards the 'existent but absent' things.
As we observe our surroundings, there are objects without concrete names or moments that have been hidden or concealed. However, when we attentively listen, albeit vaguely, we discover traces of expressions unmistakably left behind. It is seemingly delicate yet resilient, soft and fragile, but above all, solid and robust. Perhaps, this could be the most beautiful fruition imbued with intrinsic value that can be captured from fragile existences.
Parkmyungmi's work, "Abandoned House (in the Forest)" (2015-2017), is inspired by an experience recalling the landscapes of forests and abandoned houses encountered by chance on the road from the middle of the mountain to the East Sea in Yangyang. The artist primarily uses pencil, pastel, and acrylic in her painting, based on an inclusive attitude toward the infinite possibilities of familiar and modest materials. With a thin brushstroke and a light blue background, the depiction of the forest and abandoned house, overlaid with erasing and drawing, prompts us to reflect on the existential meaning of landscapes being pushed away and discarded objects.
The ongoing series "The Person Trying to Dance (Becoming-Husband)" (2024-) captures the private life of a character left behind in the role of a 'husband,' visualized through drawings. The artist focuses on the act of a person trying to dance as the sole escape in repetitive daily life, choosing to depict the movements of the body or transcribing his wishes on the canvas. By directly examining the intimate thoughts of the subject, rather than the observer's gaze, the artist materializes the process of becoming one with the 'husband' through a close relationship. In this imaginative realm, "The Person Trying to Dance" visualizes the journey of an individual constructing their inherent identity before assuming a singular role.
Minkyung uses the motif of the home as a private space, showing interest in the worldview constructed by family members living through the same routine every day. In the series "Unfamiliar Family" (2023), the artist strategically captures and records the spatiotemporal aspects of a household in the form of 'staged photos,' The artist aims to convey that while we feel the 'misery of everyday life' such as frustrated desires and repetitive lethargy, we can also find 'traces of life' left behind in this mundanity. For example, a child's body growing over time, light entering the house through a window, and the accumulation of everyday life converge into a single work. "Unfamiliar Family" attempts to capture the fleeting moments when inner cracks and inconsistencies arise in everyday life, giving them latent existential signs and meaning.
The three-dimensional sculpture, "Everyday_Family Portrait" (2023), imposed on the members in the screen is a work where images of people and objects are newly arranged through the three-dimensional photomontage method. This serves as a device to reveal cracks in everyday life and prompts a reexamination of monotonous moments, describing fragments of the story at the boundary between reality and fiction.
"Shadow Work" (2023) is a video recording of the artist directly appearing on the screen and performing domestic labor. The title 'Shadow Work' is borrowed from the book of the same name by Austrian philosopher Ivan Dominic Illich. In the intersection where the disappearance and existence of labor cross, the artist's embodied body demonstrates the performative aspect in daily life, serving as a medium to explore the hidden meaning of women's labor within the home.
Kimjaeyeon attempts various variations using different media such as photographs, fabrics, and sculptures in the series "Collapse and Accumulation" (2020-). The artist explores the theme of the fruits, earth, air, and light surrounding her daily life. The work involves scanning or cyanotype conversion of collected natural forms into images, followed by overlapping, repetition, and reconstruction transformations on the photograph. In this exhibition, the artist expands the scope of her work to extensively explore the flexibility of the medium inherent in fabric. For example, by allowing the light from the window to filter through the fabrics placed in the space, the artist observes changing patterns over time, or she notices the varied results based on fabric type, density, and texture. Through this, she examines the convergence and intersection of predictability derived from the artist's intervention with the serendipity originating from the fabric.
The series "Collapse and Accumulation" is a work about the artist's inner feelings as she perceives the daily life around her while spending more time at home due to the change in family structure.The artist traverses ambiguous boundaries between external and internal, outside and home, artificial and natural, creating an ensemble of ambiguous forms resonating together. It is an act of discoveringsomething never seen before—something "neither A nor B," and yet, it is "something like an unresolvable hole" that signifies the present self. By projecting her identity onto the shapes of nature, Kimjaeyeon seeks to find a clue to the answer in the inbetween, where things never converge into one.
In this way, the three artists amidst traces left by the unnamed, explore the process of growing into a single life, reclaiming it as their own existence. Instead of assigning names, they traverse numerous boundaries such as distant past and present, external and internal, existence and absence, memory and loss, expression and silence. They explore the 'Sense of Between', left within, in their own language. From the erasing and eroding, the journey of discovering and constructing meaning from existence rentilates the landscape, announcing a bright beginning from the darkness, much like the dawn breaking through. The private narratives gathered in this spacetime, where the temporality of dawn regresses, continuously circulate around us.
As women, artists, mothers, and wives, sharing their multifaceted identities, the three artists embody love, care, solidarity, and hope in the act of discovering the meaning of the unnamed. Beneath this lies the narrative of women, intricately linked to labor, sacrifice, selfdivision, internal conflicts, and complex emotions such as melancholy, all closely tied to their specific ways of life and physical experiences. The landscapes of the world, seen through their open perspectives, are transformed into places that encapsulate the artists' constructed worlds, each preserving its own light. Within this space, characterized by the warmth of the profound and intimate 'Dawn Light', coexisting with gentle and meticulous touches, it is hoped that moments of disappearance and absence can be sought a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