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재된 어떤 흔적들 너머_ 김재환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폐가 앞이나 오름 중턱, 양양에서 동해로 가는 길목 등에서 마주했던, 그 순간은 곧 사라질 것만같은 풍경이었다. 그 시간과 감각은 과거의 내가 느꼈던 어떠한 냄새와 색감, 기분을 상기시켰다.그때의 시공간은 먼 과거의 막연한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회상과는 다른 의미로, 환기의 과정으로써 회화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박명미, ‘아무도 아닌 그림’ 중)
작가노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박명미 작가는 곧 사라질 것만 같은 풍경/존재에 관심이 있다. 더불어 그녀는 사라질 것만 같은 풍경/존재를 만났을 때의 감각, 느낌, 기억과 조응한다. 물론 이 총체적 감(sense)은 명료한 지각으로 연결되지 않기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도 정의내리지 못한다. 다만 그 순간, 과거, 현재의 어떤 공통된 감이 작동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즉 숱한 일상 중에 공통적인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어떤 사건/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소한 일상의 사건이나 풍경이기도 하지만, 용산 강제 철거 사건, 세월호, 제주 4.3사건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박명미의 그림이 어떤 특정한 사건을 재현하거나 구체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보다시피 박명미의 그림에는 주로 흑백에 가까운 무채색 계열의 희미한 이미지들이 떨림 속에 놓여 있다. 맥락을 알지 못하면 정확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어떤 산, 어떤 언덕, 어떤 집, 어떤 사람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가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풍경/존재 뒤에 숨겨진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작가와의 대화에서 ‘파란 집(또는 폐가)과 용산 강제 철거의 희생자’, ‘다랑쉬 오름(또는 폐가)과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를 연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폭력적 상황(국가적 폭력이든 개인적 폭력이든)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 말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작가의 기억과 외부 정보, 그리고 그것을 상상하도록 해준 흔적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결국 그녀의 그림은 기억/정서가 담긴 어떤 혼재된 흔적들이 이미지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도 아닌 그림’으로 통칭되는 풍경 시리즈의 제작 과정은 그 자체로 이러한 혼재 상황을 설명해준다. 어떤 파란 집이 불타는 것1 을 본 이후 그림을 그려야할 대상을 찾지 못했던 그녀는 제주에 머물던 어느 날 빈집을 발견한다. 그곳에서의 생경한 인상을 스케치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이를 곧바로 소묘로 옮긴다. 몇 달이 흐른 뒤 어느 죽은 화가의 버려진 화판을 구하게 되고 이 흔적을 바탕으로 <폐가2>(2013)를 그린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소묘로 <폐가3>(2014~2015)과 <폐가4>(2014~2015)를 제작한다. 현실에서 그 당시와 유사한 상황, 느낌, 감각이 생겨날 때마다 조금씩 중첩시켜 완성한 그림은 그래서 몇 년 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두운 밤 풍경 속 폐가에는 애초에 없었던 눈이 내리기도 하고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풀과 물이 살포시 자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의 몽환적 이질감은 이처럼 세월이 덧입혀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느껴지는 조화로움은 다양한 시차 속에서도 유지되는 유사한 정서의 반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할 작품이 있다면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1, 2>(2017)이다. 남녀 한 쌍의 초상화가 등을 지고 공중에 설치된 이 작품 역시 앞서 제작된 몇몇 작품처럼 다른 누군가가 쓰다 버린 화판에 그린 그림이다. 버려진 화판에 ‘내가 여기 있소’라는 익명의 작은 목소리가 담겨 있는 이 그림은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대한 작가의 헌사로 읽힌다.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는 사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의 주인공 미자가 남긴 시의 한 구절이다. 사랑하는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미자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으며 가족을 맹목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 상황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1, 2>(2017)에 등장하는 두 인물 역시 해피엔딩의 모습은 아니다. 체념한 것 같으면서 무심하고 그러면서도 초연한 두 인물은 보잘 것 없는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존재의 가치를 사유하는 작가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문제의식은 생기기 마련이고, 이 문제의식 속에서 작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새롭게 구축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야하고, 그 과정에서 관람객과 소통도 해야 하고, 이런 고민 속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의심하면서도 계속 작업을 하는, 그리고 전시를 열고... 결국 아무도 아닌 그림을 그리면서 완결될 수 없는 (되찾는) 시간을 쫓고 있는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이 답답한 상황.2
이 상황에 종지부라도 찍고 싶었을까. 그녀는 제주로 향한다. 몇 년 전 제주에서 마주했던 폐가와 다랑쉬 오름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되찾는 시간 2, 3>(2017)에서는 과거의 그림과 지금의 현장이 만난다. 시간을 되찾으려는 작가는 외려 사라져 버린 시간과 장소를 그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작가의 기억과 정서로 담아낸 빈집과 다랑쉬 오름이 현재의 장소에 왜소하게 비치되어, 보잘 것 없음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 ‘보잘 것 없음’이란 말은 박명미 작가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은 사실 그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속성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가치를 제거함으로써 생겨난 인식론적 속성이다. 애초에 보잘 것 없다고 규정하지 않는 한 그것은 보잘 것 없지 않다. 그렇다고 중요한 어떤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자체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중요하게 취급받는 것들과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진다는 것.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잘 것 없는 것에 가치가 부여되길 바라는 것.
이러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박명미의 회화는 최초의 사진으로 알려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의 <그라의 창문에서 바라본 조망>(1826-7)처럼 대상의 흔적을 오랜 시간 채집할 뿐이다. 즉 존재/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일정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것의 물리적 흔적을 묵묵히 포착한다. 상황, 정서, 감각, 기억 등이 혼재된 채로 이루어진 작업이지만 결과물은 대상의 적극적인 재현이 아닌 존재의 흔적을 조심스레 가져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에는 딱히 많은 말을 보태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흔적 너머의 존재가 한순간 일어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주저리 떠든 위의 말들이 감상을 방해하지 않을까 새삼 걱정스럽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그녀의 그림이 이 글을 무색하게 만들기를.
Beyond Those Amalgamated Traces _ Jae Hwan Kim, Curator, Gyeongnam Art Museum
When I encountered the scenes – the front of the abandoned house, the mid-upwards climb of the Oreum(gentle sloped hill), on the road from Yangyang to the East Sea – they, at that moment, seemed all too fleeting, ready to disappear in a flash. The time and sensations of those moments called to mind a certain smell, color, and feeling I had come across in the past. Far from being a simple recollection of a meaningless something of the past long gone, the time and place of those moments, as a process of incitement, stirred in me a strong desire to depict them in detail as paintings.
(MyungMi Park, from The Drawing That Is Nobody)
As expressed in her Artist’s Statement, MyungMi Park is drawn to scenes and entities that seem ephemeral, and takes note on the corresponding sensations, feelings, and memories that results when she meets those scenes and entities. Being that the general ability to sense is not one of lucid awareness, Park herself is unable to know definitively what it is that she is sensing, though it is profoundly apparent that a common kind of sensation is at play in both the past and the present experience. What it means is that among the innumerous aspects of our daily lives, certain events and things cause in us exactly the same emotional reaction. And while that can be about any events or scenes from our everyday lives, they can also be extraordinary happenings of society like that of the forced tear-down and removal incident of Yongsan, the sinking of Saeweolho, the April 3rd Jeju Isalnd incident, and so on. Park’s work however, does not involve the replication of any specific incident or the use of any definitive images.
As you can see, her work remains within a limited spectrum of achromatic colors, staying closer to black and white, with fuzzy images placed amidst a trembling environment. They show something of a mountain, a hill, a house, or a person that is undiscernible without being privy to the context, perhaps the context being the story of someone hidden behind the scene or entity. While the talk with the artist revealed some evidence to link “the Blue House (or the abandoned house),” the victims of forced tear-down and removal incident of Yongsan, “Darangshi Oreum (or the abandoned house),” and the victims of the April 3rd Jeju incident, it is valid to say that as a whole it is a story about numerous people who have had to suffer injustice due to violence, whether it be at the hands of individuals or one of national level. But as the story comes about as a result of a compounded intermixing of the artist’s memory, external sources, and whatever available “traces” that allowed such an imagination to come to be, her paintings can be said to be that of some amalgamated traces that have been made into an image, laden thick with memories and emotions. The production process of the landscape series titled The Drawing That Is Nobody demonstrates precisely such a blurred situation. The artist, who could not decide on a subject to draw after witnessing a blue house burning down,1 one day during her stay in Jeju Island comes upon an abandoned house. She draws of the strange impression given off by the scene, takes a picture of it, and then makes it into a sketched drawing. A few months later she comes to acquire a drawing board of a dead artist, and based on the traces she had gathered she creates The Abandoned House 2 (2013) on it, to be followed by the sketch pieces The Abandoned House 3 (2014 - 2015) and The Abandoned House 4 (2014 - 2015) after a few years. Applying additional touches to the painting whenever she comes across in her life a similar situation, feeling, or sensation of that particular moment, the painting in its completion becomes a definitive testimony of her, embodying those few years of the artist’s life. The abandoned house inside the dark landscape of night comes to meet snowfall, a person, and the random greenery and water that were never actually there. So it appears the dreamy unfamiliarity of the painting took form with the accrual of time and the sense of harmony it simultaneously gives off results from working from a similar source of emotion constantlymaintained through the duration of time. Another work that deserves attention in this exhibition is Will the Candle Be Lit Again Should Darkness Come 1, 2 (2017). Hanging in mid-air with its backside facing forward is a portrait of a man and a woman, the piece being another one of Park’s that utilizes a discarded board like many of her other works.
Drawn on an discarded board, this particular piece has an anonymous voice softly announcing “I am here,” perhaps to be read as the artist’s dedication towards those of insignificant and inconsequential existence. “Will the Candle Be Lit Again Should Darkness Come” is actually a line from the poem the character Mija leaves behind in director Chang Dong Lee’s movie Poem (2010). In the movie, Mjia, a character who deeply cares for not only her family but everything around her, fiercely tries to protect her family against unexpected circumstances only to meet a tragic end. The two subjects portrayed in Park’s Will the Candle Be Lit Again Should Darkness Come 1, 2 (2017) are not those of a happy ending either. The two, who appear to have given up and indifferent, but at the same time seemingly unperturbed, are the very beings of trivial existence but also remind us of the artist who ruminates over the value of such an existence. Being part of society a critical mind will inevitably be forged, and while producing works under such a mindset may be natural, a kind of newly assembled image must be formed while having to communicate with the audience during the process. Despite her doubts of whether it is even possible to continue to produce work with such contemplations, Park finds herself going on, creating work and putting on exhibitions…She finds herself stuck without much she can do, in a situation where she is drawing the drawing that is nobody and chasing time that can never come to an end (regained).2
Perhaps wanting to put an end to this stifling situation, Park heads to Jeju Island, to revisit the abandoned house and Darangshi Oreum that she had come upon a few years back. The reunion is captured in Regaining Time 2, 3 (2017) where the paintings of the past meet the locations of the present, but contrary to her desire to reclaim lost time, all Park receives is the confirmation of the lost time and places. The paintings of the abandoned house and Darangshi Oreum rendered through the filters of Park’s memories and emotions are placed meekly at the same respective locations, only to further accentuate their inconsequentiality. The word “inconsequential” is important to the artist and penetrates her entire work. To be inconsequential is in fact not an existential quality possessed by an entity, but rather an epistemological one given birth when we human beings removed its value. Nothing is insignificant unless prescribed such a state, but that also does not equate being inherently important either. It merely exists as it is. Both the inconsequential and the consequential have the same existential status, and it is the hope of Park to thereupon add value to the inconsequential.
Despite such desires, paintings of Park merely collect, over a long duration of time, traces of their subjects, much like the View from the Window at Le Gras (1826-7) by Joseph Nicéphore Niépce, oldest surviving camera photograph. Rather than being actively involved with the entity or subject, the physical traces of it are diligently collecting while maintaining a constant distance. While the work itself involves the amalgamation of the situation, emotions, sensations, and memories, the product is not an aggressive reproduction of a subject but rather just a careful compilation of the traces of its existence. So it may seem wise not to be generous with words regarding her work. Simply gazing at it may call forth the entity that lies beyond the traces. Having said that, I now worry my superfluous chatter above will interfere with the true intake of her work and hope you will come to appreciate MyungMi Park’s art.
1. 이 파란집은 2009년 서울 용산에서 발생한 화재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을 상징한다. 당시 철거민들은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했는데, 이 망루가 파란색이었고 화재로 모두 망실되었다.
2. 박명미 작가의 작업은 전형적인 회화이지만 작업의 경향은 매우 개념적이고 시적이다. 이번 전시 《아무도 아닌 그림, 되찾는 시간》에도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통은 ‘아무 것도 아닌 그림’이라고 쓸 말을 ‘아무도 아닌 그림’이라 명명한다. 즉 그림 자체를 하나의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그림이 담고 있는 것이 사람에 대한 기억과 정서이기 때문이다. ‘되찾는 시간’ 또한 절묘하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섹션인 「되찾은 시간」에서 따온 제목인데 완결형인 ‘되찾은’이 아닌 미완결 진행형인 ‘되찾는’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1. The blue house refers to the 2009 fire incident in the forced removal area of Yongsan that resulted in six deaths. The residents fighting against the forced move-out set up a blue watch tower on one of the building rooftops, which was completely destroyed in the fire.
2. Park’s works while being typical paintings have the tendencies to be extremely conceptual and poetic, made evident in this exhibition The Drawing That Is Nobody, Regaining Time. She chooses the title The Drawing that is nobody to what would be normally termed The Drawing that is nothing, thus personifying the painting. This is not just a simple case of personification, as the work holds within it the memory and emotions associated with people. Regaining time is another remarkably interesting piece in that it is named after the volume Time Regained of the novel In Search for Lost Time by Marcel Proust, but Park does not use the completed preterite form of “Regained” as the original title and instead opts for the unfinished ongoing present participial form of “Regai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