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드로잉>
잡초 드로잉은 ‘과연 내가 하고 있는 회화가 말없이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을수 있을까’ 또한 '드로잉으로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 할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식물을 발견하고, 캐고, 심고, 물을 주는, 반복되는 이 행위들은 어느 순간, 내게 점점 중요한 임무처럼 행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아니 온몸으로 살려내야 하는 활동들의 그 순간만큼은 진짜인 것 같았다. 매일 조금씩 그리던 드로잉과도 같은 맥락이었다. 잡초를 파는 행위가 어쩌면 타인에게 조금 불편하고 적극적인 소비를 강요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겉으로 보기엔 무용한, 혹은 변방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목적적인 것, 위로 향하여 가야만 하는 어떤 시스템으로부터 스스로가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일반적인? 시중에 파는 식물들의 상태와 비교해 본다면 처음 심었을 때는 다소 힘이 없이 불완전해 보여도 이들은 금방 시중에 파는 것처럼 싱싱하게 잘 자라 주었다. 무리를 지어 놓고 거리를 두고 보니, 그것들만의 불규칙적 규칙성이 있는 듯 또 다른 세계가 보이기도 했다.
I started them from these questions: ‘can my painting indeed capturethings disappearing without words?’ and ‘can my drawing realize more active communication?’
The repeated actions of discovering,digging, planting and watering plants have been considered as my important duties at some point. My actions not just by my hands but body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seem real at the moments of doing.
Drawings I have been doing everyday little by little are also in the same context. Perhaps selling weeds can be seen as active encouragement of consumption and make others feel uncomfortable. It can also be a story about things that are needless outwards or things that are not the mainstream. However, to me, it is more about an attempt to get away from a purposive system that aims to reach the top. If I compared weeds with other plants ordinary sold in shops, weeds surely looked weak when planted at first but grew well shortly.
When I looked them in groups, I could find their own regularity in their irregularity and see another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