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그림>
몇 년 전 내가 졸업반이였던 때, 학교 옆 동네, 이 땅의 어떤 파란 집은 불타고 있었다. 그 후, 졸업을 하고 오랫동안 그려야 할 대상을 찾지 못했다.
몇 년 후, 제주,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시간, 길을 걷다 우연히 빈 집이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여행길이라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어느새 새로운 것마저 익숙해져 발길 닿는 데로 걸으며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빈 집, 그 앞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익숙했던 장면 같기도 하면서도 완전히 낯선 것을 보는 생경한 인상이었다.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였다. 주변을 맴돌다 재빨리 스케치를 했고, 사진을 찍었다. 돌아와 사진을 바탕으로 다시 소묘로 옮겼고, 몇 달 뒤 어느 죽은 화가의 버려진 화판 위에 그 흔적을 바탕으로 다시 유화로 옮겼다. 나는 이 당시 아주 잠깐 동안 민미협-민중미술협회-이라는 곳에서 간사로 일했었다. 그저 단순일, 사무보조일을 맡게 되었고, 간간히 협회 행사에 참여했다. 이맘때쯤 협회에 주요 인물중? 한 분이셨던 여운작가는 돌아가셨고, 나는 그의 작업실에서 그의 유작들을 정리하는 일을 돕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그의 몇몇 화판들-그는 버려진 화판 또는 누군가에게 받은 화판에 그림을 그릴 려 했는지 그 화판들에는 조금씩 끄적거린 그의 드로잉 흔적들이 보였다-과 물감들을 버렸고, 나에게 주기도 했다. 나는 그것들을 주어다 그의 물감으로 그의 드로잉 흔적의 바탕으로 폐가와 다랑쉬오름, 양양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소묘로 옮겼다.
옮기는 과정에서 주변의 풍경은 의도치 않은 손이 가는 데로 그려나갔다. 반복해서 그린 그림들은 미묘한 차이가 생겨나갔다. 없었던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그 앞에 물이나 나무가 생기기도 하고, 때론 눈이 내리기도 한다.
폐가 앞이나 오름 중턱, 양양에서 동해로 가는 길목 등에서 마주했던, 그 순간은 곧 사라질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그 시간과 감각은 과거의 내가 느꼈던 어떠한 냄새와 색감, 기분을 상기시켰다. 그때의 시공간은 먼 과거의 막연한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회상과는 다른 의미로, 환기의 과정으로써 회화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로 현실의 삶 에서 비슷한 상황, 느낌, 어떤 감각이 오면 그때를 떠올리며 기억하며 그리기를 반복했다. 몸과 손을 움직여 한 장면을 그릴 동안 그 잔상과 현재의 감각이 뒤섞이면서 다음으로 그려질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려진 그림들은 그때의 감각도, 그 먼저의 감각도 아닌 지금과 연결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완전한 결론도 아닌 그 무엇으로 남아있게 된다. 그것들을 나열해 두면 이야기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그리기 과정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른다.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은 나에게 ‘그리기’란 무엇일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되찾는 시간>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5살난 조카와 가위바위보를 했다. 조카는 공주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약속도 하지 못한 채 웃고 말았다. 오늘, 어린 조카는 내게도 소원을 묻는다. 어떤 세계가 떠오른다. 나는 몇 년전 폐가를 처음 만났던, 오름을 처음 올랐던, 풍경이 내게 다가왔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의 페가그림과 다랑쉬오름을 들고 다시 그곳을 찾아가기로 한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 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아네스의 노래 <영화 '시'에서 미자가 쓴 시/이창동>
<A Painting that is Nobody>
For a quiet long time after college, I was not able to find a subject to paint. I just kept imaging this and that while I was interested in humans, the world, anxiety, memory, and drawing.
One day I was walking along the street. The sun was slowly setting, and there I came across a deserted house. Everything I saw was new to me on the journey, but as I was going where my feet took me, I was getting used to even those new things over time. Then, this deserted house stopped me in my tracks. It was a familiar scene, but at the same time, it was also a totally strange scene. I quickly began to sketch and took a picture of it. After I returned from the journey,
I drew it again based on the photograph, and after another several months, I painted it in oils. And then, again, I did a drawing of the house. During the process of depicting the house over and over, I would just let my hand draw its surrounding landscape in an unintended way. Therefore, subtle differences emerged between the drawings. The sense of time which has stopped in front of the deserted house reminded me of some smells, colors, and feelings that I had felt in the past. The then place and time awakened a desire in me to give body to vague stories of the past concretely with a language of painting as a process of awakening, not just as a reminiscence which means recalling the past. (Refer to The Deserted House) After that, I began to take notes or pictures everytime I travel or read newspaper, poem, and novel. I kept drawing whenever I had such a similar feeling or some sense, and sometimes the next scenes came to mind as a mixture of the afterimage and current sense while I drew one scene with my body and hand.
The results of drawing remain as a something that is not a complete conclusion which seems to be connected to the current sense- not then sense or sense of the past- , or not. For example, the previous drawing and the after-drawing (which was a process of depicting the chosen images that approached me) sometimes become a story when they are placed side by side even though these two scenes have no association or narrative. Depending on the way of arraying the drawings, the scenes might be read as a new story. I am not so sure if such a process of drawing can ever be meaningful.
Perhaps, it would be meaningless. At the same time, for me, this process becomes a fundamental question about 'what is painting.' Obviously, the act of transferring the mediocre afterimages onto canvas or paper constantly is important itself.
I hope that those accidentally arrayed images become a small hole for viewers to escape into a new story and their own world.